○선운산 암장소개○
-1993년부터 속살바위.투구바위 등에 250여 루트 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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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살바위 새내기(5.11b)를 등반 중인 정강오씨. 다양한 홀드와 기본적인 동작이 필요한 새내기는 선운산 바위의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는 루트라고 한다. |
자유라는 말은 어디에 같다 붙여도 늘 인간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산악인 김장호씨의 책 제목인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라는 말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산이라는 것은 인간의 자유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수직의 벽에 가서 달라붙으면 자유등반이 된다. 등반이라는 것이 곧 몸무게를 이기고 중력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일인데 굳이 ‘자유’등반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있는가? 하지만 분명 자유등반은 색깔이 다르다.
- 알피니즘, 웃통 벗고 매달리다
처음 선운산 투구바위를 찾았을 때 주렁주렁 걸려있는 카라비너를 보고 놀란 기억이 있다. 사실 몇 개 가져가야겠다는 못된 욕
심이 들었다. 그때 다행히 주변에 등반하는 팀이 하나도 없었기에 도둑이 담을 넘듯 바위에 매달렸지만 실력이 안 되는지라 번
번이 카라비너가 걸려있는 곳까지도 올라서지 못하고 그냥 내려와야 했었다.
“자기가 못 끝낸 루트에는 카라비너를 회수하지 않고 걸어둡니다. 다음에 와서 다시 시도하겠다는 의미지요.” 8년 전부터 매주
이곳을 찾았다는 이윤재(광주클라이밍클럽)씨의 설명을 듣고서 기자는 그제야 바위에 걸린 카라비너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말이 없어도 아주 간결하고 정확하게 ‘자유등반’을 설명하고 있었다.
선운산은 해발 336m의 낮은 산이다. 높이랄 것도 없는 작은 산은 온통 안산암이라고 하는 구멍이 숭숭 뚫린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그 산의 바위를 공식적으로 처음 오른 사람은 이승조(거리회), 유학재(트랑고 대표)씨와 이동윤(억센알파인 대표)씨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첫 바윗길이 난 것은 1993년 3월이었다.
개척자는 당시 노량진클라이밍센터에서 활동하던 고 박현규씨였고, 그때 도솔암 천마봉에 개척한 길은 ‘너를 만나기 위해 지
구를 반 바퀴 달려왔다’라는 긴 이름이었다.
그리고 지구를 반 바퀴나 달려온 그 오름짓은 마치 지난 150여 년 전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하나의
유령이 온 유럽을 배회하듯이’ 전국의 온 산을 휩쓸며 산 다니는 사람들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남녘의 작은 산에 매 주말이면 개척의 바람이 불었다. 내로라하는 걸출한 클라이머들은 모두 선운산으로 모여들었다.첫 손을
탄 천마봉 말고도 용문굴과 투구바위·속살바위·문바위 그리고 산 바깥의 할매바위·병바위·전좌암까지 순식간에 250여 개의
바윗길이 솟아났다.
어느새 클라이밍은 스포츠와 하나가 되어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것은 마치 고매한 만년설 위에 머물던 알피니즘이 타이
즈에 웃통을 벗어젖히고 촘촘히 박혀있는 볼트 사이로 내려온 것과도 같았다. 이제 암벽화에 퀵드로 몇 개면 누구라도 ‘수직’
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단 25m의 높이에 화두를 걸고 매달렸다. 숫자로 표시되는 등급은 냉정하게 소수점 단위로 높아가고 0.01의 간극을
넘어서기 위해 클라이머들은 담배를 끊고 술을 줄였다. 사람들은 선운산을 두고 조심스레 ‘자유등반의 성지’라고 부르기 시작
했다.
투구바위에 주렁주렁 걸린 카라비너가 늘어가는 만큼 ‘성지’를 찾는 순례자의 발길도 늘어갔다.
이윤재씨는 먼저 속살바위의 새내기(5.11b)와 남자예선(5.12b)에 줄을 걸었다. 새내기는 선운산 바위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대표적인 코스라고 한다. 어렵지는 않지만 다양한 크기의 홀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남자예선은 1996년 전국암벽
대회 남자예선 루트로 개척된 곳이다.
아침 햇살은 먼저 속살바위를 비추고 정오가 되면 투구바위 쪽으로 넘어간다.
속살바위나 투구바위나 매 한 덩어리 바위의 다른 면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지만 속살바위에는 5.10~5.12급에 이르는 루트가
많고 투구바위에는 5.13급 이상의 루트가 여러 개 있다. 그래서 고수들은 먼저 속살바위에서 몸풀이를 하고 햇살을 따라 투구
바위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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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3급 등반은 그 아랫 단계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동작을 요구한다. 투구바위 진달래 탈춤(5.13b)을 등반 중인 이윤재씨. |
- 속살 벗고 투구 쓰다
취재등반을 함께한 이윤재·정강오·김세나씨는 모두 광주클라이밍클럽 회원이다.
올해 첫 바위라는 그들의 말은 곧 겨울방학이 끝나고 첫 시험이라는 말처럼 들린다. 겨울 동안 실내암장에 매달려 연습한 기량
을 실전에서 스스로 테스트하는 것이다.
자리를 옮겨 김세나씨가 백암3(5.10c)을 등반하는 사이 김석준씨가 올라왔다. 이렇게 모이는 것을 보니 마치 별다른 약속 없이
시간이 되면 놀이터에 모여드는 동네친구들을 보는 것 같다. 이제 등반을 시작한지 만 1년 남짓 된 김세나씨는 자연바위에서
의 경험은 부족하지만 이윤재씨의 코치를 받으며 침착하게 선등을 마무리했다.
이어 여자예선(5.12a)과 신세대(5.12b/c)에서 두세 번씩 워밍업을 마친 취재팀은 그늘이 점점 커지는 속살바위를 피해 투구바
위로 자리를 옮겼다. 투구바위에서 본격적인 ‘써틴 구역’인 가장 우측은 샌드월(5.13a/b)부터 5.14급으로 예상되는 아침 햇살
까지 국내 최고 수준 난이도의 루트가 한군데 모여 있다.
이윤재씨는 긴 호흡을 한번 하고 샌드월(5.13a)에 붙었다. 5.13이라는 숫자는 그 아랫 단계의 난이도에서는 볼 수 없는 응용된
동작과 힘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기자가 섣불리 말할 수 없는 오랜 경험과 노력에 의해 탄생한 하나의 신들린 춤과 같았다. 샌드월을 마치고 5.13b급의
진달래 탈춤으로 무대가 옮겨가자 춤은 더욱 격정적으로 불타올랐다.
깨끗이 등반을 마치고 난 그는 얼굴이 상기되어 내려왔다. 이어 김석준씨와 정강오씨가 같은 루트에 붙었다.그들에게는 5.13급
루트가 처음이다. 몇 번을 추락하고 나서야 마지막 퀵드로를 통과했지만 이제 그 루트는 몇 달간 그들의 카라비너가 걸려있어
야 할 하나의 숙제가 되었다.
투구바위 등반을 마치고 하산길에 문바위에 들렀다. 문바위는 속살바위에서 도솔제 쪽으로 200여m 내려간 곳에 있다. 규모는
속살바위만큼 크지 않아 10여 개의 루트가 개척되어 있고 난이도도 5.8급부터 5.11급까지 비교적 쉬운 루트가 많다.
이곳에는 낯익은 동판이 하나 박혀있다. 지난 1998년 설악산 토왕골 눈사태 사고 당시 구조작업 중 숨진 고 김덕기, 박은규씨
의 것이다. 문바위에 난 대부분의 바윗길은 박은규씨가 개척했다. 그는 첫 눈사태가 났을 때 구사일생으로 탈출해 살아 내려
왔으나 매몰자를 구하기 위해 다시 토왕골로 올라갔다가 2차 눈사태에 묻혔다.
- 바위에 부는 자유의 바람
선운산은 산 주변에도 독립적으로 솟은 바위가 많다.
선운산을 찾던 클라이머들은 평야를 가로지르는 곳에 우뚝 선 바위를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대표적인 암장은 할매
바위·전좌암·병바위 등이다.
아산초등학교 뒤편에 작은 사당의 호위병처럼 서있는 전좌암은 1995년 대산련 등반대회가 열린 곳으로 고 박현규씨 등이 개척
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당 앞 수림을 베어내고 증축 공사를 하고 있는 사유지라 등반이 어렵다. 병바위는 손정준씨 등이 4개의
루트를 개척했지만 숲길을 오래 걸어 들어가야 하기에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
클라이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할매바위다. 1994년 3월부터 한국봔트클럽 등이 개척한 할매바위는 암장 바로 앞에 넓은
공터가 있고 도로에서 1분이면 접근할 수 있다. 이곳은 5.9급부터 5.12급까지 25개의 루트가 있어 초보자에서 중급자까지
다양한 등반을 할 수 있다.
취사와 야영은 자유롭지만 암장 앞 아산휴게소의 사유지라서 깨끗하게 사용해야 한다.
김석준씨가 준비해 온 닭을 삶으며 늦은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김세나씨는 아리랑할매(5.10b)와의 한판 승부를 시작했다.
이긴다고 한들 할매바위가 고개를 숙이는 것도 아니고 진다고 한들 제 물건을 내어주는 내기도 아니지만 1㎝가 모자라 떨어
지고 계란 하나를 쥘 만큼의 힘이 모자라 또 떨어지고 만다. 봄볕에 땀을 흘리던 사이 어느덧 서산에 해가 기울고 바위의 그림
자도 길게 늘어진다. 그림자가 발끝까지 다가올 무렵 김세나씨는 끝내 아리랑할매를 올라섰지만 가슴 한구석이 아쉽다.
2% 부족한 자유를 메우기 위해 그는 오늘이 지나면 다시 손끝에 온 힘을 집중할 것이다.
자유는 언제나 매력적이다. 선운산에서 들불처럼 번진 자유등반의 흐름도 인간의 역사를 닮았다. 마르크스가 일찍이 선운산
을 찾았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만국의 클라이머여 자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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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매바위 초·중급자에게 맞는 25개의 루트가 개척되어 있다. RED LAND(5.11a)를 등반 중인 김석준씨. |
- 도솔제휴게소 정보련씨
선운산 암벽등반사의 증인
정보련씨는 선운산 암벽등반사를 처음부터 낱낱이 보아온 산증인이다.
석삼리 이장을 맡고 있는 남편 박봉주씨와 1979년부터 도솔제 입구 삼거리에서 매점과 식당을 운영해 왔기 때문이다. 12년
전 처음 개척등반이 이루어지던 때를 생생히 기억하는 정보련씨는 지난주에 서울에서 누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두
알고 있을 정도로 산악계의 정보통이다.
후한 인심덕에 이곳을 찾는 클라이머들에게 누님으로 통하기 때문.
도솔제휴게소에는 빈 방이 2개 있어 민박도 가능하다. 하룻밤에 2만5천원이고 따로 아침식사도 된다. 산채비빔밥이 맛있다.
도솔제휴게소 주간 063-562-1575·야간 063-564-0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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