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imbing Utility/릿지 정보

대둔산 아름다운동행

마칼루2 2008. 8. 9. 17:24

 

○대둔산 리지 '아름다운동행'○

 

 

연일 계속된 장맛비 예보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내일 전국 맑음’ 이라는 텔레비전 기상

 캐스터의 또랑또랑한 예보 소리에 부리나케 대

전으로 전화를 했다. “저희 내일 무조건 내려갑

니다.” “아! 내일은 좀 곤란한데. 모두 시간 때문

에…, 하여튼 최선은 다해보지요.” 대전 산악계

의 견인차 이기열(41세·대전산악연맹구조대)씨

와 통화를 마치고 대둔산 산행을 위해 일찍 잠

에 들었다.

 

새벽녘 자명종 울리는 소리에 잠을 깨 서둘러

대둔산으로 향했다. 이번 달로 세 번째 방문인

대둔산이지만 취재진은 한 주도 날씨 걱정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래선지 어제는 꿈도 꾸었

다. 맑은 하늘아래 아름다운 소나무 사이를 떠

다니듯 솟아있는 암릉을 오르는 꿈을… 힘껏

밟은 가속 페달 덕택에 취재진은 세 시간 만에

대둔산도립공원 케이블카 승하차장 앞 ‘산 산

산’ 식당에 도착했다.

 

벌써 이곳에는 오늘 산행의 주인공인 대전의

아름다운 동행 산악회 회원들과 이기열씨 그리

고 이번 대둔산 리지 취재기간 동안 항상 함께

했던 대둔산산악구조대의 오종택씨가 취재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밥 먹고 올라가자.

오늘 등반은 만만치 않아서 밥 많이 먹어야 해.”이른 새벽에 달려온 탓에 정종원 기자와 취재진은 허겁지겁 된장찌개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출발을 준비한다.

 

부산히 움직여 대둔산 오르는 케이블카에 몸을 실었다. 오늘 우리가 오를 ‘아름다운 동행

리지’는 등반시간이 6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니 내심 온종일 등반 할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전망대에 도착하자 다행히 구름이 조금씩 벗겨지기 시작한다. 케이블카 승하차장을 정면으로 보고 우측의 등산로를 따라 칠선봉 전망대 가는 길로 20분 정도 오르자 표지판 좌측의 바위에 있는 故 오동선씨 동판이 보인다.

 

바로 이곳이 아름다운 동행 리지 초입이었다.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용문골을 따라 바로 올라서는

 코스를 택하면 용문굴 바로 위 60미터 지점에서 동판이 보인다. 아름다운 동행 리지는 2007년

3월 아름다운 동행 산악회의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전 회원이 두 달간 고생 끝에 가장 최근에

개척된 리지다. “산악회와 루트 명이 같아요. 무슨 소설 제목 같기도 하고요.”

 

기자의 질문에 오늘 등반에 함께한 아름다운 동행 산악회 서웅(46세) 전 회장은 그간 산악회

연혁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한다. ‘아름다운 동행’이란 클럽 명칭은 두 여성 산악인의 열정적인

등반과 삶을 그린 닛타 지로의 소설 ‘아름다운 동행(원제 자일 파티)’을 읽은 한 회원의 제안으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 그는 현재 아름다운 동행 산악회는 수평적 인간관계와 공부하는

등반에 중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서둘러 등반 준비를 했다.

 

“그거 무거워서 다 못 가지고 간다. 저 위 계곡에 데포 시키고 간식만 챙겨라.”

오늘 등반을 위해 참가한 최승희(37세), 최진수(26세), 김우(24세) 씨의 배낭에서 나온 간식은

상상을 초월했다. 수박 1통과 배낭 반을 채우고도 남을 빵과 떡 그리고 각종 간식. 서웅 대장의

말대로 이걸 다 매고 8마디 등반을 하기는 무리였다. “그래도 수박은 가지고 가죠. 더울 텐데!”

막내인 김우씨는 기어코 수박 한통을 챙겨 배낭에 넣고 출발 준비를 한다. 동판 바로 위에서

시작하는 첫마디 등반을 서웅씨가 나선다. 보기에도 날렵해 보이는 그가 동판을 넘어 좌측으로

트래버스를 시작했다. 아직 몸이 덜 풀렸는지 조심스레 등반을 이어가는 모습이다.

 

하지만 세 번째 볼트를 지나자 등반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이후 들리는 ‘완료’ 소리가 힘차다.

발밑으로는 깊이 팬 용문골이 적나라하게 다가온다. 곧바로 두 번째 마디 등반에 나섰다.

서웅씨는 본인의 등반뿐 아니라 오늘 등반을 무사히 마치고자 전체 적인 모든 사항을 꼼꼼히

챙기며 등반에 임한다. 그 이면에는 1997년 대전등산학교 2기를 수료하고 그간 많은 국내

개척등반과 외국원정 등반에 참여한 경험들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두 번째 마디는 반 침니

형태의 20미터 수직구간으로 중간에 큰 촉스톤 하나가 튀어나온 쉽지 않은 코스였다.

 

다시 서웅씨가 등반에 나섰다. 반 침니의 특성상 흐르는 홀드를 잡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올라야

하는 속칭 ‘노가다 길’이었다. 서웅씨는 재밍과 스테밍 자세로 무사히 촉스톤을 넘어 시야에서

사라진다. 곧바로 오종택씨가 등반에 나섰다.

“여기 쉽지 않은데! 한 동작이 자세가 잘 안 나와.”

어렵지만 깨끗하게 등반을 이어가려는 그의 얼굴에는 눅진눅진한 날씨와 격한 등반 동작으로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번째 마디 넓은 테라스에 도착하자 막혔던 시야가

터지며 적나라한 아름다운 동행 리지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위 능선에 있는 봉우리까지 가야 해.”

 

서웅씨가 가리키는 능선은 아직 멀었다. 서둘러 짧은 하강을 하고 바로 세 번째 마디로 향했다.

 아름다운 동행 리지 중 가장 어려운 코스로 가파른 페이스와 슬랩 그리고 크랙까지 등반해야

하는 20미터 등반 종합선물세트였다. 하지만 오르려는 자들의 등반의지는 벽이 아무리 거칠고

높아도 좀처럼 꺾이지 않는 법이다. 등반은 혼자서 감당하기 벅차다. 온 위험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함께 산정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동행, 자일에 묶인 운명공동체, 그래서 이들은 등반을 아름다운

 동행이라 부르는지 모르겠다.

 

서웅씨가 등반에 나서고 최승희씨가 확보자로

 나선다. 함께 가는 운명의 줄이 팽팽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느슨해지기도 한다. 네가 가니 나도

 간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같이 가자는

의사소통이다. 그 의사소통에는 등반의 지원을

 위해 먼저 세 번째 마디 종료지점에 도착한

최진수, 김우씨도 같이 한다. 좌측 볼트를 따라

 슬랩과 크랙을 넘어 세 번째 마디 등반을 마무리했다.

 

유난히 무거웠을 수박을 막내 김우씨가 배낭에서

 꺼내놓으며 한마디 던진다.

“시원하게 한쪽씩 드시죠.”

“가지고 오느라 고생했다. 잘 먹을게.”

선후배의 따뜻한 말 사이로 수박의 시원함이

목청을 타고 오르는 갈증을 잠재운다. 이때 직장

일로 늦게 합류한 김진선(45세)씨가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취재진에 합류했다.

 

머리 위에 있는 5미터 독립봉은 시간 관계상

우회하기로 했다. 다시 짧게 하강을 해 능선 위

독립봉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다섯번째 마디는

 독립봉으로 가는 도중 만나는 작은 바위벽이었

다. 숲길을 따라 오르자 5.8급, 10미터 길이의

쉬운 바위가 나타났다. 이 마디를 연등으로 넘어

서자 60미터 정도 숲길이 이어진다.

 

여섯 번째 마디는 20미터 길이로 초반의 세 번째

 볼트를 지나 우측으로 트래버스 하는 것이 조금

 까다로웠다.다시 경사가 급한 숲길에 조금 올라

서자 저 아래서 바라본 마천대에서 낙조대로 가는 능선상의 독립봉이 바로 코앞이다.

일곱 번째 마디는 말 그대로 독립봉의 날 등을 타고 올라야 하는 5.9급, 20미터 바위능선이었다.

 

 마치 송충이가 움직이듯 8명의 등반은 선두와 후미가 긴 날 등을 타고 길게 이어졌다가 조금씩

좁혀지기 시작했다. 곧바로 마지막 넓은 크랙 등반에 나섰다. 재밍과 레이 백 등반을 이용해 모두

 수월하게 크랙을 벗어나 드디어 정상 너럭바위에 섰다. 지난 두 달간의 취재기간 동안 한 번도

푸른 하늘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던 하늘이 열리자 햇빛을 받은 용문골 신록의 푸름이 반짝인다.